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2
The Wapshot Chronicle by John Cheever



괴로웠던 질투를 다읽고 드디어 왑샷 가문 연대기!
기대된다.
모종의…연결고리? 모종의…복선? 모종…삽?
글 부분부분에 흩뿌려놓은 존 치버 식의 비꼬기가 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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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이지키얼은 보스턴에 정착해서 라틴 어, 그리스 어, 히브리 어, 플루트를 가르쳤다. 총독부에서 그에게 일자리를 제의했지만, 그는 현명하게도 이를 거절했다. 이로써 300년 후 리앤더와 그 아들들의 운명을 희롱하게 된, 사려 깊은 사절이라는 가문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누군가는 이지키얼이 "가발을 혐오했으며, 영연방의 안녕을 항상 꺼림칙하게 생각했다."고 썼다. 이지키얼은 데이비드, 미카바, 아론을 낳았다...
...데이비드는 로렌조, 존, 야버디아, 스티븐을 낳았다. 스티븐은 앨피어스와 네스토를 낳았다. 영국과의 전쟁에 장교로 참전했던 네스토는 워싱턴 장군이 훈장을 주겠다고 했으나 거절했다. 이지키얼이 확립한 전통과 일치하는 행동이었다. 이 사려 깊은 사절에는 자신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양키다운 약삭빠름도 일조했다. 눈에 띄는 사람이 되는 것, 영웅이 되는 것에는 성가신 경제적 부담이 따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가문의 어느 누구도 영예를 수락하지 않았으며, 가문의 여자들은 자신을 깎아내리는 이 전통을 더욱 더 확대해 외식을 할 때면 음식을 깨작거리기만 했다. 차를 마실 때 샌드위치를 거절하거나 일요일에 닭고기를 거절하는 것, 아니 무엇이든 거절하는 것이 인격의 특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식탁에서 일어설 때 항상 배가 고팠지만, 항상 목적의식을 새로이 다졌다. 홈그라운드에서는 물론 늑대처럼 음식을 먹어 치웠다. -22p

...벌들과 유행에 뒤떨어진 등들이 사라진 문명의 유적처럼 발치에 널려 있었으며, 공기가 엄청나게 싸했다. 마치 18세기의 어떤 조상이 햇볕 쨍쨍한 해변에서 마데이라 백포도주를 마시고 견과류를 먹으며 세월의 흐름을 생각하다가 그날의 열기와 빛을 병이나 바구니 같은 곳에 담아 이곳 다락에 풀어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활기를 잃어버린 여름의 냄새가 났고, 여름의 빛과 소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 같았다. -24p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서 털 깎는 사람 앞에 모인 엄청난 양 떼처럼 애인들과 함께 북적거렸다. 잘생기고 엄숙하고 키가 큰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우아한 여성들과 가장 훌륭한 집안의 여성들까지 한데 모여 천막 입구 근처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밀쳐 대며 가능한 한 가까운 자리를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28p

...공기 중에는 소금 내가 배어 있었다. 동풍이 불어오기 시작했으니까. 조금 있으면 이곳은 모종의 목적과 광채와 슬픔을 안게 될 것이다. 부인들은 거리의 집과 느릅나무들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자기 아들들이 멀리 떠나 버릴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들은 왜 떠나고 싶어 하는 걸까? 젊은이들은 왜 떠나고 싶어 하는 걸까? -40p (how romantic!)

...그녀의 애인은 위스키를 마시고 종이컵을 손으로 구겼다. 왼쪽의 남녀 한 쌍은 가려고 일어섰다. 그들이 가고 나자 그가 다시 물었다. 지금? 지금? 그녀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사랑의 힘에서 고독의 힘을 떼어 놓으려고 애쓰느라 지쳐 있었다. 그녀는 고독했다. 그녀는 고독했고, 바닷가에서 물러나는 햇빛과 다가오는 밤 때문에 예민해져서 겁이 났다. 그녀는 마음속 방들 중 적어도 한 곳에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물끄러미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마른 얼굴에 색욕이 걱정처럼 내려앉았다. -47p (아, 이 단호한 필체, 너무 맘에 든다)

...우리는 버스와 기차에서, 부엌과 식당에서 할머니들이 피부가 썩어 들어가면서 생긴 상처에 대해 너무나 슬프고 음악적인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해 봐도 결국은 육체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느낀 당혹감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오노라는 굳이 의학 용어를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타협책을 만들어 냈다. 문제의 단어를 첫음절만 발음하고 나머지는 중얼중얼 얼버무리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자궁 절제 수술은 자궁중얼중얼이 되었고, 화농은 화중얼중얼이 되었으며, 고환은 고중얼중얼이 되었다. -62p

...모든 것이 죽어 있었다. 죽은 이파리, 죽은 나뭇가지, 죽은 양치류, 죽은 풀. 숲의 모든 것이 죽어서 역한 냄새와 곰팡내를 풍기며 길 위에 두껍게 쌓여 있었다. -95p

...그녀(오노라)는 마침내 웨스트 농장으로 가서 그 집에 새로 온 낯선 여자를 만나 보기로 했다. 그녀 빗속을 뚫고 빗속을 가로질러 보트 거리에서 리버 거리로 가서 옆문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이봐, 이봐, 아무도 없어?"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 낯선 아가씨가 남는 방에 있는지 보려고 계단을 올라갔다. 서둘러 정리한 침대, 여기저기 의자에 흩어진 옷, 꽁초가 가득 찬 재떨이를 보고 그녀는 불쾌하고 수상쩍은 생각이 들어서 벽장문을 열어 보았다. 그래서 모지스와 로절리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벽장ㅊ 안에 있었다. 모지스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둘 다 기분 좋은 일인데 그게 뭐가 나빠요?"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올 때 오노라는 벽장 문을 닫았다.
  그 다음에 오노라가 들은 소리(그녀는 많은 소리를 들었다.)는 지금 우리와 관계가 없다. 이건 냉정한 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폴리네시아에서 태어나 미스윌버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고 자선 사업을 하는 노부인이 순전히 진실을 찾으려다가 비 오는 오후에 좁은 벽장에 갇혀서 느낀 딜레마만 고려할 것이다.
  그날 오노라가 그 집을 떠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19p

2부
겉으로는 순수해 보이는 풍경. 웨스트 농장을 생각했다. 즐거운 여름날의 기억! 아버지를 생각했다. 돈이 없어서 삶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어졌다. 평생의 교훈은 '돈을 벌어라.'인 것 같았다. 직옥의 불도 욕망만큼 강렬하게 타오르지 않는다. 가난이 모든 악의 근원이다. 누가 도둑인가? 가난한 사람. 누가 주정뱅이인가? 그것도 가난한 사람. 차든 거리에서 딸들이 낯선 사람에게 다리를 벌리게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가난한 사람. 아들이 아버지 없이 자라게 하는 것은 누구인가? 가난한 사람. -224p

수염패랭이, 레몬백함. 협죽초와 앵초.

...강 위 언덕의 가족묘지. 물, 산, 들판 덕분에 처음으로 감각이 돌아왔다.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 낡은 집 지붕이 멀리 보였다. 쥐, 다람쥐, 호저 들이 사는 곳. 아이들에게는 귀신 나오는 집. 기도 중간에 바람이 약해졌다. 멀리서 전기처럼 찌릿찌릿한 비 냄새가 났다. 나뭇잎들 사이에서 나는 소리. 그루터기, 수명이 짧다고 프리스비 신부가 말한다. 그는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비가 더 말을 잘하고, 기운을 복돋워 주고, 자비롭다. 사람 귀에 닿는 가장 오래된 소리. -234p

...낯선 대도시에서 맺어진 이 비공식적인 결혼 또는 결합 덕분에 코벌리는 몹시 행복했다. 그녀는 사랑받는 쪽이었고, 그는 사랑하는 쪽이었다. 이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었으며 이것이 코벌리의 기질에도 잘 맞아서 그는 뭔가를 열심히 추구하는 사람처럼 활기차게 그녀에게 구애했고,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녀는 친구를 찾으려고 끈질기게 노력했지만 실망을 맛보았고, 코벌리는 그 실망감과 분노를 없애줄 수 있었다. ... 그는 그녀가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마음속 깊숙한 곳에 뛰어난 인간적 감성과 애처로운 방랑자 기질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 스스로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연인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면서도 그에게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 늦겨울에 코벌리는 그녀에게 청혼했다. 벳시의 반응은 산만했지만, 그래도 눈물을 글썽이며 예쁘게 굴었다. -248p

리앤더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젊었을 떄도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곤봉으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던 기억이 났다. 그녀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궁금했다. 로렌조는 일기장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악마를 만나거든 놈을 둘로 가르고 그 사이로 지나가야 한다고. 오노라의 행동이 딱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게처럼 신중하게 삶을 살아온 것이 혹시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무절제, 마음의 평화처럼 우리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면전에 들이미는 것들을 피해 옆걸음질하다가 그녀가 활기찬 노년의 수수께끼를 밝혀 낸 것 같기도 했다. -303p

3부
사람은 단순하지 않다. 사랑이라는 도깨비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395p

4부
...그런데 비가 내리기 전, 이 낡은 집이 이미 사라져 버리거나 흉내 내야 할 생활 양식이 아니라 웃음처럼 따뜻하고 덧없는 삶의 이상처럼 보였다. 그가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어떤 것처럼.
  리앤더는 마지막으로 말을 남겼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뒤에 코벌리는 아론의 셰익스피어 책을 펼쳤다가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주는 충고."라고 써 놓은 쪽지를 발견했따. 그 내용은 이러했다.
"건조한 지역이나 나라의 경계선을 넘어갈 떄는 절대 위시키를 보온병에 넣지 마라. 고무 때문에 맛이 변할 것이다. 절대 바지를 입은 채 사랑을 나누지 마라. 위스키에 맥주를 타는 건 아주 위험하다. 맥주에 위스키를 타는 건 전혀 겁낼 필요 없다. 위스키를 마실 떄는 사과, 배, 복숭아 등을 절대 먹지 마라. 프랑스 식으로 오랫동안 만찬을 즐기면서 맨 마지막으로 과일을 먹을 때만 빼고. 다른 음식들이 진정 효과를 내니까. 달빛을 받으며 잠들지 마라. 과학자들 말로는 그것이 고아기를 불러온다고 말한다. 침대가 창가에 놓여 있다면, 맑은 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블라인드를 내려라. 시가는 손가락과 직각으로 들지 마라. 촌스럽다. 시가는 대각선으로 들어라. ...공포는 녹슨 칼날 같은 맛이 난다. 그것을 절대 집 안에 들여놓지 마라. 용기에서는 피 맛이 난다. 꼿꼿하게 서라. 세상에 감탄해라. 부드러운 여자의 사랑을 즐겨라. ..." -461p

작품해설 - 일상성의 미학
"소설이란 예술이며, 예술은 혼돈에 대한 승리" - 치버

"문학은 저주받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문학은 연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안내해 준다. 또한 절망을 몰아내고 어쩌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을을 써야 할 필연성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자신의 유용성을 찾아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치버

치버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가 장밋빛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중간쯤 이르러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이 무렵 치버는 자신의 문학에 대해 동료 작가 허버트 골드에게 "무너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오늘날 강력한 삶의 부조리성 떄문에 나는 전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갑자기 부조리해진 세계의 의미를 깨닫기 위하여 치버는 단편소설에서 장편소설로 눈을 돌렸다.

...이러한 갈등과 대립은 이번에는 좀더 형이상학적인 문제로 발전하기도 한다. 즉 치버는 이 작품에서 때로는 이중적 인간성을 다루기도 하고, 때로는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근엄하고 품위있는 사회적 가면 뒤에는 내적 부패나 타락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삶의 겉모습과 실제 모습,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심연이 가로놓여 잇었다. 이 작품에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모순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한편 모지스와 코벌리 사이의 갈등과 긴장은 상징적으로 선과 악의 대립을 보여 주기도 한다. 물론 치버는 선과 악을 뚜렷이 대조하거나 두 가지 중 어느 한쪽을 택하지는 않는다. 이 점과 관련하여 그는 "지혜란 선과 악을 꺠닫는 데 있을 뿐 그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고 못 박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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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imm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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