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pshot Scandal

me/literature 2011.11.27 23:44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3
The Wapshot Scandal by John Cheever



재밌다!
존 치버의 담담한 묘사와 풍자가 너무 좋다.
연대기보다 더 짜임새있었다고 해야되나.. 연대기에서, 리앤더가 화자로 나오는 부분이 무척 싫었는데, 몰락기는 리앤더가 죽었기 때문에 더 재밌었던 것 같다. (ㅎㅎㅎ) - 하지만 연대기에서 리앤더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였다. 단지 그의 필체가 싫었을뿐!
하나같이 속물들인 멜리사나 벳시라는 인물들. 어찌 그리 수많은 좋은 여자들 중 악질들을 골라 자신들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 왑샷의 몰락은 리앤더에서부터 서서히 진행되다가 코벌리와 모지스에 와서 극에 달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는데만 걸린 시간 무려 17일. 일때문에 책조차 읽을 시간이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게 삶인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취미생활 하나쯤 영위할 수 없다면
내가 보기엔 영혼이 없는 삶이다.
경력은 쌓지만 자기 자신은 어디있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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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그렇게 사람들의 껍질을 뚫어 버리는 것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구석진 곳에 사는 불행한 주정뱅이 여자가 벌거벗은 서정 시인 수십 명이 숲 속에서 자신의 뒤를 쫓는 꿈을 자주 꾼다 해도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멜리사는 따분했다. 춤을 추고 있는 이웃 사람들도 따분한 것 같았다. 외로움도 심각한 문제였다. 그녀는 외로움에 시달리다 보면 빛과 말동무가 아주 다정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따분함은 다른 문제였다. 세상 어느 곳보다 번영을 누리고 있으며 공평한 이곳에서 왜 모든 사람이 따분하고 실망한 것처럼 보이는 걸까? -73p

그녀는 범프스 트리거에게 술을 좀 가져다 달라고 했고, 그는 그녀에게 짙은 색의 버번을 한 잔 가져다주 었다. 그녀는 깊은 향수를 느꼈다. 그녀가 꿈속에서도 알아보지 못한 감정의 섬이나 반도를 향한 갈망. 그 녀는 그 땅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곳은 낙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감정적인 풍요로움 과 자유 덕분에 기분이 들뜰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자신이 지금보 다 훨씬 더 낫게 살 수 있다는 굉장한 느낌이었다. 위싱 부인의 무도회는 현실이 아니고, 이 세상은 선과 악으로 엄격히 나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욕망이라는 절대적인 권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생각. -74p

난봉꾼은 우정이라는 기쁨을 맛볼 수 없으며 경찰의 의심을 받는다. 때로는 직장을 잡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털이 많고 무식하게 생긴, 결혼한 이웃에게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모지스가 멜 리사와 함께 나누고 있는 화산 지대는 엄청나게 넓었지만, 그에게 화산 지대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것 외에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좋아하는 위스키 상표도 서로 달랐고, 좋아하는 책 과 신문도 달랐다. 사랑이라는 어두운 원 밖에서 보면 두 사람은 거의 생판 남 같았다. 그는 기다란 만찬 탁자 저 아래쪽에 앉아 있는 멜리사를 흘깃 바라보며 밝은 색 머리카락의 저 예쁜 여자가 누군지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그가 침대에서 보여 주는 난폭함, 그의 자상함이 순전히 자발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을 멜리사는 어느 날 아침에 알아차렸다. 홀에 있는 탁자의 서랍을 열었더니 한 달 또는 6주 전의 날짜가 표시된 메모 묶음이 나왔던 것이다. 메모의 제목은 '음주 기록'이었다. 메모의 내용은 이러했다. "12일 정 오 마티니 석 잔. 3:20 강장제 한 병. 5:36~6:40 기차에서 버번 석 잔. 저녁 식사 전에 버번 넉 잔. 모젤 포 도주 0.5리터, 저녁 식사 후 위스키 두 잔.날짜가 바뀌어도 메모의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메모지를 다시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잊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75p

둘 중 누구 하나는 꼭, 잊어야 하는 관계들. 우리 주위에 자꾸만 나타나는 갖가지 얼굴들 중에는 특정한 왕국의 동전에 새겨진 얼굴처럼 보이는 얼굴, 즉 똑같은 이목구비와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이는 얼굴들이 있다. 전에 존슨을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중에 누군가를 보고 존슨이라고 생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성숙함'이라 는 단어를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긴 얼굴을 갖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갑작스러운 상실과 무례한 타격을 여러 번 겪었지만, 그런 감정적 상처는 아무리 봐도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성실하고, 소박하고, 수수께끼처럼 보였다. 세상에는 세계 일주를 세 번이난 하는 사람도 있고, 이혼하고 재혼하고 다시 이혼하면서 아이들과 헤어지는 사람도 있고, 큰돈을 벌어 낭비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해서 처음 시작했던 지점으로 돌아가 보면 똑같은 창문에 똑같은 얼굴들이 있다. 담배와 신문을 파는 영감님도 똑같 은 사람이고, 우리가 아침마다 인사하는 엘리베이터맨도 똑같은 사람이며, 저녁마다 인사하는 사무원도 똑같은 사람이다. 존슨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모두 못이 바룻바닥에 박히듯 불운 때문에 삶 속으로 밀 려온 사람들 같다. -79p

...존슨은 2층으로 올라가 장애물 경주 그림이 그려진 잠옷을 입은 뒤 페이퍼백 소설을 읽었다. 그것은 재산이 수백만 달러나 되고, 로마, 파리, 뉴욕, 호놀룰루에 각각 집이 있는 젊은 여자에 관한 소 설이었다. 1장에서 그녀는 스키 산막에서 남편과 그 짓을 했다. 2장에서는 식품 창고에서 집사와 그 짓을 했다. 3장에서는 그녀의 남편과 집사가 수영장에서 그 짓을 했다. 그 다음에는 여주인공이 하녀와 그 짓 을 했다. 그때 남편이 그 두 사람을 발견하고 함께 즐겼다. 그 다음에는 요리사가 우체부와 그짓을 했고, 요리사의 열두 살짜리 딸이 말구종과 그 짓을 했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600쪽이나 계속될 터였다. 그는 이 이야기가 어딘가의 종교 기관에서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류가 아는 온갖 추잡한 짓을 다 해 본 여주인공은 머리를 박박 밀고 납반지를 낀 채 어딘가의 수녀원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타 락한 남편이 수도사들이 신는 조잡한 샌들 차림으로 산골의 병든 창녀에게 가져다줄 항생제 병을 들고 눈 보라 속을 뚫고 나아가는 모습이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외로운 남자가 읽기에는 한심한 작품 같았다. 존 슨 자신처럼 이 딱딱한 침대에 누워 외롭지 않은 삶을 갈망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고독이 저절로 증식하는 것 같았다. -85p 천재적이다

...캐롤라인이 그에게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벳시 언니가 어떤 남자랑 결혼했는지 만나 보고 싶 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뱀브리지 사람들은 벳시 언니가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언니 가 워낙 이상한 사람이라서." 코벌리는 이 말 속에 독설이 숨어 있음을 깨닫고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가 이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치 기로 했다. 그냥 조지아에서는 '이상하다'는 말이 매력적이고 독창적이고 아름답다는 뜻으로 쓰이는 모양 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99p

캐롤라인은 사흘간 머물렀다. 그녀가 비극적인 인간사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는 점과 모든 물건에 립스틱 자국을 남겨 놓았다는 점만 빼면 그럭저럭 참아 줄 만한 손님이었다.(저녁 식사 전에 그녀가 한 말만 잊어버린다면.) 그녀는 입이 큰 편이었는데 거기에 립스틱을 진하게 발랐기 때문에 컵과 유리잔, 수건과 냅킨에 모두 자주색 립스틱 자국이 남았다. 재떨이에는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가 수북했 고, 화장실에는 항상 자주색 얼룩이 묻은 크리넥스가 있었다. 코벌리가 보기에 이것은 단순히 부주의한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행동이었다. 자기가 아주 잠깐 머무르다 떠날 이 집에 자신을 각인시키는 간접적인 방법 같은 것. 자주색 얼룩은 그녀가 외로운 여인이라는 표식 같았다. -101p
 
사람들은 결혼 생활의 비밀을 무엇보다도 빈틈없이 감춘다. 코벌리도 바름을 피운 이야기라면 거리낌 없 이 할지도 모른다. 그가 감추고 싶은 것은 정절에 대한 자신의 열정이었다. 그녀가 말도 안 되는 일로 그 를 비난한 것이나 그의 셔츠에서 단추를 잘라 버린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의 팬티를 태워 구멍 을 내고, 그에게 납을 먹였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현관문을 잠가 버리면, 그는 창 문으로 기어 들어갈 것이다. 만약 그녀가 침실 문을 잠가 버리면, 그는 자물쇠를 부술 것이다. 만약 그녀 가 그에게 독설을 퍼붓고, 그를 비난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도끼나 고기 자르는 칼을 휘두른다 해도 문 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맷돌, 그의 족쇄, 그의 천사, 그의 운명이었고, 그가 품은 가장 화려한 꿈 의 원료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올아 가겠다고 말했다. "괜찮아." 벳시가 말했다. "괜찮아." -106p

...제임스타운에서 로티의 색욕을 의심했다. 애슈터블라에서는 옷을 넣어 두는 벽장에서 벌거벗은 낯선 사람을 발견했다. 클리블랜드에서 현장을 잡았다. 황금 커프스단추를 팔아 3월 18일에 증기 기관차를 타 고 보스턴으로 돌아왔다. 나쁜 감정은 없었다. 웃으면 세상도 함께 웃는다. 울 때는 혼자다. -120p

그녀는 대개 그에게 맥주를 한 잔 주고 부엌에 그와 함께 앉아 있었다.그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흥 분시켰다. 자기가 아주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세속적인 면, 교묘함이 조금씩 그에게 전염되 어 식품점 점원으로 일하는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그녀가 아주 수줍은 표정 으로 느닷없는 말을 했다. "있잖아, 넌 성스러워." 그는 그녀가 돌아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이 가끔 그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 다. 그는 제정신이 아닌 여자 옆에서 빈둥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성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 었다. 만약 그가 성스러웠다면 벌써 예전에 그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성스럽고 스스로도 그 사 실을 알고 있다면 성스러움이 드러나지 않게 숨겼을 것이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자기 보호 본능 때문에. "가끔 내가 잘생겼다는 생각은 해요." 그는 그녀의 찬사를 조금 다른 말로 바꾸려고 열심히 애썼다. 그가 맥주잔을 비웠다. "이제 가게로 돌아가 봐야 돼요." -138p 여자들이 가끔씩 얼마나 얼빠진 소리를 해서 정 을 떨어뜨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하하하... 그렇지 않은 이에게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걸 보 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

...그녀는 몸을 덜덜 떠는 노인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30대 남자였다. 그는 몸에 꼭 붙는 청바지에 짙은 색 스웨터를 입고 뒷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그녀의 집 앞 계단에 서 있었다. 그가 가슴을 묘하게 내밀고 있는 것이 자부심의 표현 같기도 하고, 우정의 표시 같기도 하고, 추파를 던지 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피부는 가무잡잡했고, 입 주위에는 부츠의 봉합선처럼 깊은 주름이 나 있었으며, 눈은 갈색이었다. 그의 미소는 추파 그 자체였다. 그는 그런 미소밖에 지을 줄 몰랐지만 그녀는 그것을 몰 랐다. 그는 삽을 향해서도 그렇게 요염한 미소를 지었고, 위스키 잔에도 요염한 미소를 지었고, 자기가 파 놓은 구덩이를 향해서도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가 되면 자기 차의 시동 장치를 향 해서도 요염한 미소를 짓곤 했다. 그녀는 그에게 위스키를 권했지만 그는 나중에 마시겠다고 말했다. 그 녀가 그에게 연장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자 그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142p
 
...어느 날 오후에 그는 탤리퍼에서 뉴욕으로 날아가 플라자 호텔에서 밤을 보냈다. 루치아나에 대한 갈망 이 단순한 굶주림의 충동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강해졌다. 호텔 침대에 누워서 그는 머릿속으로 그녀 의 모습을 하나씩 그려 보는 특권을 자신에게 허락했다. 그녀의 입술, 가슴, 팔, 다리, 아, 바람과 비, 그리 고 기꺼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품에 안는 기분이라니! -217p

...그녀는 그를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사면을 원했다. 그녀가 바람을 피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그 리도 혁명적인 일인가? 그녀의 선택이 틀렸을 지도 모르지만, 그건 역사 속에서 비만큼이나 흔한 일 아닌 가? 그녀는 모지스에게 사실을 털어놓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그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을 알고 나면 자신을 집에서 쫓아낼 것 같았다. 그녀는 황소의 뿔에 받힌 것 같았 다. 그녀는 자연스러운 여자가 되고 싶었다. 관능적이지만 로맨틱하지는 않고, 유쾌한 기분으로 애인을 사귀다가 때가 되면 역시 유쾌한 기분으로 애인과 헤어질 수 있는 여자.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기질 속에 숨어 있던 죄책감과 욕정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녀는 점잖은 사회의 규칙을 터겼다. 그 래서 이제는 자신이 경멸하는 예법에 묶여 꼼짝도 못 하게 된 것 같았다. 그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서 그 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술을 한 잔 따랐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요리사한테 얼음을 달라고 하면 창피할 것 같았다. -302p 누군가에게는 사회의 예법을 어긴다는 것이 트라우마로,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나약한" 진짜 모습을 발견했을 때, 혹은 그럴 위기가 트라우마이다.

멜리사는 그가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곳을 찾아왔지만, 차라리 헛간 문이나 돌멩 이한테 그런 감정을 요구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어리석음, 그의 천박함 을 도저히 어쩌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그녀에게 연민의 감정을 보여 주지 않 는다면, 그녀가 오히려 그에게 연민의 정을 발휘해서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책임이 있는 게 아닐까? 어 리석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갈채를 보내는 이 뚱뚱하고 단순한 남자를 적어도 참아 주기만이라도 해 보려 고 애쓸 책임 말이다. 그가 벽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일 때 그녀의 마음을 건드린 것은 바로 그의 구식 신 앙심이었다. -308p
 
3부 그는 뚱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건 사이먼한테 잘못하는 짓이 될 테니까. 하지만 초연해 보이고 싶기 는 했다. 애당초 자기는 여기에 참가할 생각이 없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는 아래쪽의 사람들을 보 지 않고 대신 카페 뒤의 벽에 걸려 있는 산펠레그리니 광천수 광고판을 노려보았다.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삼촌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령은? 그가 살던 파시니아의 그 어두운 집은 어디 있는 걸까? -360p

그녀는 그렇게 한다. 사지투리우스 거리에 있는 수프라 마르케토 아메리카노에 가서 수백 개나 되는 카트 중 하나를 꺼낸다. 금속이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그녀는 카트를 밀고 벽처럼 늘어서 있는 미국 음 식들 사이를 지난다. 인생이 안겨 준 타격에 당황해서 슬픔에 잠겨 있는 그녀에게 이것이 약간의 위로가 된다. 이것이 그녀가 택한 길이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다. 곱슬머리 한 가닥이 그녀의 뺨 위로 흘러내려 있다. 눈물 때문에 그녀의 눈이 빛 속에서 반짝이지만, 슈퍼마켓 안에 사람이 워낙 많ㅇ다. 게다가 여자가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장을 보는 일은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슈퍼마켓 안의 낯 선 사람들에게 무심하다. 마치 그들이 그녀의 삶 속을 흐르는 개울과 수로에 불과한 것처럼. 사람들로 이 루어진 이 개울가에서 버드나무가 비스듬하게 자라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오필리아를 가장 많이 닮았다. 석죽, 쐐기풀, 난초를 엮은 화려한 화관 대신 소금, 후추, 클렌저, 크리넥스, 냉동 대구 완자, 양고기 파이, 햄버거, 빵, 버터, 드레싱, 아들에게 줄 미국 만화책, 자신을 위한 카네이션 한 다발로 화관 을 만든다는 점이 다를 뿐. 그녀는 오필리아처럼 옛날 노래를 흥얼거린다. "윈스턴은 맛이 좋아. 담배라면 당연하지. 미스터 클린, 미스터 클린." 자기만의 화려한 화관이 완성된 것 같아서 그녀는 계산을 한 뒤 전 리품을 들고 그 자리를 떠난다. 슬픔에 빠져 있지만 어느 누구 못지않게 위엄 있는 모습으로. -388p 마치 한 여성이 파란만장한 인생의 한 장을 마치고 아픔을 회상하는 영화에서, 엔딩 씬으로 카메라가 위로 빠지는 것을 연상시키는 그런 장면

"오노라 고모님한테 우리가 여기서 크리스마스를 지낼 거라고 약속했어."
 "그 고모님은 돌아가셨다며. 이미 땅에 묻혔다며."
 "내가 약속했어." 순간적으로 아내와 자신 사이의 이 틈새 앞에서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 분노 때문인지 절망 때문인지 그의 피가 뭔가 달콤하고 거품이 이는 액체, 그러니까 코카콜라 같은 것으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오노라와 한 약속을 깨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벳시의 입장에서는 그가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임을 분명 히 알 수 있었다. 코벌리는 남과 여의 전쟁에서 지고 있는 사람답게 살짝 몸을 웅크린 채 아내와 나란히 걸었다. 반명 벳시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고개를 단호하게 쳐든 자세로 그가 떨어뜨린 자부심 조각들을 모조리 주워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390p

이 여덟 명의 눈먼 손님들은 인간적인 친절함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가 붐비는 도로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낯선 사람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상대의 손길 하나로 상냥한 사람 과 독선적인 사람을 구분하고, 남의 눈에 띄는 것을 너무나 꺼려 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 조차 싫어하는 사람들의 무심함을 견디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아온 그들 은 너무나 강렬해서 한낮의 눈부신 빛조차 눌러 버리는 어둠으로 가득 찬 풍경을 함께 끌고 다니는 것 같 았다. 그들은 시력을 잃었지만, 그것은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통찰력을 강화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 다. 마치 인류의 조상이 원래 장님이었던 것처럼. 그래서 앞을 못 보는 것이 아주 오래전 인류의 특징 중 하나였던 것처럼. 그들은 또한 밤의 미스터리를 응접실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들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듯했다. 황홀감만큼이나 강렬한 불행의 맛, 낙오자, 패배자, 실패자, 이미 놓쳐 버린 것(비행 기, 기차, 배, 기회)을 꿈꾸다가 깨어나서 텅 빈 활주로, 텅 빈 대합실, 텅 빈 수로를 보게 되는 사람들, 죽 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조용히, 참을성 있게, 수줍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3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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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imm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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