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inted Veil

me/literature 2011.08.02 21:50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The Painted Veil by William Somerset Maugham



서머싯 몸의 소설중 네번째로 읽는 책!
폭풍의 언덕의 감동과 여파에서 아직 벗어나지 않아 실망할까봐 많이 걱정했는데
키티와 월터의 대면부분은 내가 그자리에 있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더라!
마담 보바리와 흡사한 경박하고 가벼운 여성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콜레라 지방으로 가고나서 봐야겠지!

다읽고 난 소감. 마지막에 너무 빠르게 전개된듯한, 그리고 약간 작위적인 듯한 극적인 엔딩은 좀 맘에 안들었다. 손발 오그라들게 설정적이라고 할까? 그 전까진 좋았었는데. 배타고 가다가 어머니의 죽음을 통보받았을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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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치한 인간임이 명백하게 밝혀진 다른 남자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이 이상할 따름이었다. 기나긴 날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결과, 그녀는 찰스 타운센드의 가치를 정확하게 매길 수 있었다. 그는 평범한 남자였고 그의 자질은 저급했다. 그녀의 가슴속에 아직 잔존하는 그 사랑을 산산조각 낼 수만 있다면! 그녀는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173p

하지만 그 모든 감동적인 경험에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져 분명하고도 집요하게 키티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조제프 수녀의 쾌활함 속에서 그리고 원장 수녀의 아름다운 호의 속에서는 특히 더 그녀를 짓누르는 무관심을 느꼈다. 그들은 친절하고 심지어 진실했지만 동시에 뭔가를 뒤로 숨기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무심한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와 그들 사이에는 장벽이 존재했다. 그들은 서로 입의 언어 뿐 아니라 가슴의 언어도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문이 그녀 앞에서 닫혔을 때 그들은 그녀를 그들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추방하고 지체 없이 손을 놓았던 일거리로 다시 돌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는 그, 영세한 수녀원에서뿐 아니라 그녀가 온 마음을 다해 그토록 갈망했던 신비한 영혼의 정원으로부터 내몰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외로움이 이보다 더 절절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밀려왔다. 그것이 그날 그녀가 운 이유였다.
힘없이 고개를 젖히면서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아, 난 너무 무가치하구나." -176p

"설명하기 힘드네요. 오늘 수녀원에 갔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곳의 모든 일들이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너무나 끔찍했고 수녀들의 자기 희생이 너무나 경이로워요. 어리석은 여자가 당신에게 부정을 저질렀다고 해서 당신이 괴로워한다는 건, 당신이 내 말을 이해해 주면 좋으련만, 부질없다는 생각, 쓸데없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드는걸요. 당신이 조금이라도 내 생각을 하기엔 난 너무나 무가치하고 하찮아요." -178p

"그건 부당해요. 내가 어리석고 경박하고 천박하다고 해서 날 비난하는 건 공평하지 않아요. 난 그렇게 자랐어요. 내가 아는 모든 여자들은 다 그래요. ...... 교향곡 연주회가 지루하다는 사람에게 음악에 대한 기호가 없다고 힐책하는 것과 같아요. 내가 갖지 못한 품성을 내 탓으로 돌리고 나를 비난하는 게 공평한가요? 난 내가 아닌 존재인 척하면서 당신을 속이려고 한 적 없어요. 난 그냥 예쁘고 명랑해요. 장터 노점에서 진주 목걸이나 담비 외투를 찾지 마요. 주석 트럼펫이나 장난감 풍선을 찾으라고요." -182p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의 모습에서 사물의 무상함과 애수가 밀려왔다. 모든 것이 흘러갔지만 그것들이 지나간 흔적은 어디에 남아 있단 말인가? 키티는 모든 인류가 저 강물의 물방울들처럼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서로에게 너무나 가까우면서도 여전히 머나먼 타인처럼. 이름 없는 강줄기를 이루어, 그렇게 계속 흘러흘러, 바다로 가는구나. 모든 것이 덧없고 아무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 사소한 문제에 터무니없이 집착하고 그 자신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인간이 너무나 딱했다. -205p

그는 그가 아이의 아버지냐고 물었더랬다.
"모르겠어요."
그가 희미하게 킥킥거렸다. 그것이 키티를 떨게 만들었다.
"좀 어색하네, 그렇지?"
그다운 대답이었고, 그에게서 기대한 말과 정확히 일치했지만, 그녀의 가슴은 철렁 무너져 내렸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여 진실을 말했는지 그가 과연 짐작이나 할까 하는 의문이(동시에 그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았고 달리 어쩔 수 없었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가 그녀의 말을 믿어 주기나 할까?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하는 그녀의 대답이 그녀의 머릿속을 쿵쿵 울렸다. 다시 주워 담기는 불가능했다. -221p

그녀는 그의 인간성에 몸을 던지고 자비를 구하고 싶은 본능이 일었다. 어쨌든 그들이 그 모든 일을 극복하고 공포와 절망의 무대 한복판에서 살아 있는 마당에 간통 같은 어리석은 짓거리에 연연해한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어 보였다. 모퉁이 하나만 돌면 죽음이란 놈이 감자를 땅에서 캐내듯 인명을앗아 가며 활개를 치는 이때에 누가 몸뚱이를 더럽혔네 어쩌네 하는 것에 신경을 쓰다니 바보 같은 짓이었다. 찰스가 그녀에게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그래서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일조차 얼마나 힘겨운지, 그에 대한 사랑이 그녀의 가슴에서 완전히 빠져나가 말라 버렸다는 걸 그에게 납득시킬 수만 있다면! 그녀는 타운센드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그와 벌인 갖가지 행동들은 이제 중요성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이제 심장을 되찾았고 자신의 몸을 바쳤던 사실은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 그녀는 월터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이봐요. 우리 바보짓은 이제 할 만큼 하지 않았나요? 우린 서로에게 애들처럼 부루퉁해 있어요. 입 맞추고 친구가 되는 게 어때요? 우리가 연인이 아니라고 해서 친구가 되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226p

"관현악단의 각 단원들이 자신의 작은 악기를 연주할 때 허공 속으로 퍼져 나가는 복잡한 하모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은 오직 그들 자신의 작은 역할에만 신경씁니다. 하지만 그들도 교향곡이 아름답다는 걸 압니다. 듣는 사람이 없어도 그것은 여전히 아름답고 그들도 자신의 역할에 만족합니다."
"저번에 말했던 그 도를 말씀하시는군요. 그게 뭔지 말씀해 보세요."
"그것은 '길'과 '길을 가는 자'입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걸어가는 영원한 길이지만, 어떤 존재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것 자체가 존재이니까요. 그것은 만물과 무(無)이지요. ... 소망하지 않기를 소망하라고 그것은 가르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라고 합니다. 비천한 사람이 온전히 지속됩니다.  ...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고 성공은 실패가 도사린 함정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언제 전환점이 나타날 지 짐작할 수 있을까요? 부드러움을 추구한 사람은 심지어 어린애처럼 될 수 있습니다. 부드러움은 공격한 자에게 승리를 불러오고 방어한 자에게 안전을 가져다줍니다. 위대함은 스스로를 극복한 자의 것입니다."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가끔은, 위스키를 대여섯 잔 들이켜고 나서 별을 바라볼 때 난 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 267p

...이 부인들은 키티를 깨지기 쉬운 자기처럼 대했다. 그들이 그녀를 작은 영웅으로 우러러 보는 티가 역력한지라 그녀는 유감없이 재치를 발휘하여 겸손하고 신중하게 그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 가끔 워딩턴이 옆에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는 특유의 짓궂은 영민함으로 그 상황을 재미있게 관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끼리 있을 때 그것을 놓고 함께 한바탕 웃음을 터트릴 수도 있었으리라. 그는 도로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가 수녀원에서 헌신적으로 일한 것이며 그녀의 용기와 자제력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은 모양이었다. 물론 그는 그들을 교묘하게 놀리고 있었다. 비열한 개처럼. - 296p

...키티는 자신이 아버지의 애정을 얻기 위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집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적이 없었고 그저 당연한 존재였으며 가족에게 더 화려한 것을 제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다소 멸시를 받아야 했으며 돈을 벌어오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을 당연시했고 그 때문에 그녀에 대한 그의 공허한 마음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았다. 그들 모두가 그를 지겨워한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그도 똑같이 그들을 지겨워한다고는 한번도 생각지 않았다. 그녀가 고난을 겪으며 터득한 슬픈 통찰력은, 아버지는 언제나 다정하고 조용한 사람이지만, 절대로 자신에게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안 할지라도 마음속으로 는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에게 암시하고 잇었다. -324p

<옮긴이의 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반드시 사랑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오히려 괄시하고 그 애정을 저버릴 가능성이 많다. 달리 짝사랑, 외사랑이 인류의 영원한 레퍼토리가 된 것이 아니다. 내게 애정을 품은 사람을 판단히기에 앞서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내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잔인함이 흉물처럼 꿈틀거리는 것이다.
...이처럼 서머싯 몸은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의 양태를 고발하면서도 인간의 그러한 어리석음까지 사랑할 때 용서가 가능하고 비로소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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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imm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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